현대 여성의 욕망을 그린 서브스턴스 재조명
『서브스턴스(The Substance)』는 단순한 바디호러 영화가 아닙니다. 데미 무어와 마가렛 퀄리가 열연한 이 작품은, 여성의 욕망, 정체성, 사회적 억압과 해방의 문제를 극단적인 설정 속에서 날카롭게 파헤칩니다. 욕망과 젊음에 대한 집착, 타인의 시선에 의해 구축된 자아,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내부적 분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 영화는, 지금 우리가 다시 돌아보아야 할 여성의 내면을 섬세하면서도 충격적으로 그려냅니다.
중년 여성의 신체, 사회적 ‘투명화’와 갈망
『서브스턴스』의 출발점은 너무나 현실적입니다. 영화는 중년의 여성이 사회에서 어떤 방식으로 지워지고 무시당하는지를 명확하게 드러냅니다. 데미 무어가 연기하는 주인공은 과거에는 주목받던 인물이었지만, 나이 들면서 자연스럽게 존재 자체가 사회적 배경으로 밀려나는 ‘투명인간’이 되는 현실을 경험합니다.
그녀는 이제 누군가의 욕망의 대상이 아니며, 업무적으로도 영향력이 약해지고,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도 의심하게 됩니다. 이는 실제 많은 여성들이 중년 이후 느끼는 사회적 소외와 정체성 상실과도 연결됩니다. 여성이 나이 든다는 것은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여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과정으로 치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입니다. 이 신비한 물질은 그 사람이 잠재적으로 간직한 욕망의 형상을 물리적으로 구현해 줍니다. 이 약을 투여한 순간, 데미 무어의 또 다른 자아이자 젊고 매력적인 새로운 나 (마가 렉 퀄리 분)가 탄생하게 됩니다.
이 설정은 판타지처럼 보이지만, 실은 현대사회가 여성을 어떻게 규정하고, 여성이 어떻게 자기 자신을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즉, 이 작품의 시작은 나는 누구인가? 라는 정체성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하여, 결국 나는 나로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극본적 성찰로 이어집니다.
욕망의 시각화, 자아의 분열과 충돌
영화의 중반 이후부터는 욕망과 정체성의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시각화 작업이 펼쳐집니다. 마가렛 퀄리가 연기하는 ‘젊은 자아’는 단순한 육체의 재현이 아니라, 주인공이 억눌러왔던 감정—분노, 질투, 열망, 섹슈얼리티—의 결정체입니다.
이 젊은 자아는 처음에는 주인공의 삶을 보완해 주는 듯 보이지만, 곧 독립적인 정체성을 갖고 스스로를 주인공보다 더 우월한 존재로 여깁니다. 이는 단순한 육체적 갈등이 아닌, 내면의 분열이 겉으로 드러나는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메시지는, 이 갈등이 악의가 아닌 욕망의 본질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점입니다. 사회는 끊임없이 여성을 순종적이고 자기절제적인 존재로 길들이려 합니다. 이때 억눌렸던 감정은 억압된 채 내면 깊숙이 잠복하다가, 서브스턴스라는 촉매제를 통해 현실로 분출됩니다.
감독 코라 립셋은 이러한 심리적 구조를 신체의 괴이한 변화와 분열, 융합 등의 시각적 기법을 통해 표현하비다. 영화 후반으로 갈수록 두 자아는 신체적으로도 경계가 모호해지며 충돌하게 되고, 관객은 그 장면을 통해 인간 내면의 이중성과 자아 붕괴의 공포를 직접 목격하게 됩니다. 결국 서브스턴스는 단순한 SF적 설저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낸 '이상적인 여성상'과 현실의 여성 사이의 간극,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심리적 균열을 물리적 언어로 번역한 장치입니다.
사회적 시선, 아름다움의 기준을 해부하다
『서브스턴스』는 비주류 영화처럼 보이지만, 오늘날 미디어와 SNS가 끊임없이 강조하는 ‘여성다움’과 ‘젊음’에 대한 비판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여성들은 단지 아름다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늘 경쟁력 있고, 유행에 민감하며, 자기관리에 철저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 속에 살아갑니다. 이 영화는 그러한 압박의 정체를 낱낱이 해부합니다.
데미 무어와 마가렛 퀄리의 대조적인 존재감은, 우리가 이상적인 여성상을 얼마나 외적인 이미지로 규정하고 있는지를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영화는 단순히 늙어간다는 생물학적 변화를 공포스럽게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변화에대한 사회의 냉혹한 시선과 그것이 여성의 자아에 미치는 영향을 적나라하게 조명합니다.
여기서 바디호러는 단지 육체의 변형이 아닌, 자아의 변형입니다.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살아온 결과, 내면은 점점 내것이 아니게 되는 과정을, 고통스럽고도 직설적으로 묘사합니다.
이런 점에서 서브스턴스는 여성을 대상화하는 문화와, 그 문화에 순응해버린 여성 내부의 감정까지도 비판하고 있으며, 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결론: 불편함을 직면하게 하는 진짜 여성 영화
『서브스턴스』는 쉽게 보기 힘든 영화입니다. 시각적으로도 충격적이고, 이야기 자체도 불편합니다. 그러나 이 불편함은 사회가 외면하고 싶어 하는 진실, 즉 여성의 내면에 대한 진지한 탐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누구의 시선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당신의 욕망은 정말 당신의 것인가?”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 현실적인 공포를 마주하게 만드는 이 작품은, 여성이라는 존재를 둘러싼 수많은 규범과 허상을 해체하고, 스스로를 직면하게 만드는 강력한 심리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서브스턴스』는 바디호러의 껍질을 쓴 페미니즘 심층 심리극입니다. 단순히 여성 영화로 분류되기엔 그 깊이가 너무도 강렬하고, 사회비판적 시선은 날카롭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건, 이런 영화입니다. 눈을 돌리고 싶지만, 반드시 직면해야 할 이야기 말입니다.